동쪽으로 난 대추나무 가지
한혜윰
오전에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마침 일을 하던 중이라 받지 못했는데,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평소 누나가 문자 메시지를 자주 보내긴 하지만 이상하게 ‘확인’ 버튼을 누르고 그 짧은 몇 초의 순간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아빠 안면마비가 와서 지금 한의원 와있다.”
답장을 보내는 대신 점심을 먹고, 일에 몰두했다. 얼마간 그러고 있다가 검색창에 ‘안면장애’, ‘구안와사’ 따위를 쳐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괜히 미안한 마음에 집에 전화를 했다. 엄마가 받았다. 안면장애가 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데 아버지는 신경성이거나 바이러스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신경과에서 말했단다. 그래서 정밀검사는 받아 본 거야? 아버지 고혈압 있는 건 이야기 했고? 나는 괜히 엄마에게 신경질을 부리듯 이것저것 따졌다.
일을 마치고 아버지에게 들릴까 하다가 그냥 집으로 향했다. 뭔가 켕기는 기분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도시락 통을 씻고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삼촌!”
해나였다.
“삼촌 왜 안와?”
다섯 살 난 조카의 말에 머쓱해져 서둘러 전화를 끊고 집을 나섰다.
부모님 댁에 도착을 하니 다른 가족들이 아버지를 빙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그 가운데 마치 진기한 구경거리라도 보여주듯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누워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누나는 아버지가 눈을 못 감는다고, 눈을 감으면 윙크를 한다며 깔깔댔고, 엄마는 웬 새총 같은 나뭇가지를 아버지 입에 걸고 귀 쪽으로 당기고 있었다.
옛말에 ‘구안와사’가 오면 동쪽을 향해 가지가 난 대추나무를 꺾어 삐뚤어진 입에 걸어 당기면 낫는다는 이야기를 누나네 시댁에서 들었다며, 마침 누나 집 앞에 아무렇게나 자란 대추나무에서 꼭 동쪽을 향해 난 가지를 꺾어왔다는 대추나무 가지로 엄마는 아버지 입을 힘껏 당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심술궂게 보이던지, 거기다 대고 “뭐 그 따위 미신이 다 있냐!”며 빨리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왠지 아버지 입을 당기는 엄마의 모습이 즐거워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무슨 말도 안 되는 동쪽으로 난 대추나무 가지 타령이야!”라고 농 섞인 불만을 터뜨렸다.
“엄마 혹시 아빠한테 무슨 악감정 있는 거 아냐? 그래서 지금 복수하는 거지?”
“어머! 왜 아니래? 오늘 이걸로 이 양반 입을 찢어 놓을라니까!”
엄마의 말에 기가 막혀서 “내가 그거 못하게 하려고서라도 집에 안 가고 여기서 보초 서야겠다!”라고 툭 내뱉었다.
“얘가 언젠 지 집 있다고 유세더니! 가지 말라고 해도 가던 놈이 오늘은 웬일이래?”
난 아버지랑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누고, 엄마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나서 곧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님과 떨어져 산 지 고작 몇 해가 지났다고 이젠 제집이 편한 것이다.
문득 예전 일이 떠올랐다. 명절날 차례를 지내는데 숙부가 차례 순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참견하시는데 울컥 화가 치밀었던 적이 있었다.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부모님이 도둑질을 하거든 그것도 도와드리는 것이 효”라 하셨거늘, 까마득한 큰형님인 아버지에게 막내숙부가 말참견을 하는 것을 보고 부아가 치밀었던 것이다. 사실 그깟 차례 순서가 별건가. 어차피 우리 집 조상님도 본래 개똥이 말똥이로 불리다, 언젠가 피천득이 말한 것처럼 제비뽑기로 우연찮게 임가(林哥)를 뽑았을지 모를 일이다. 그것도 아니면 족보를 샀거나, 그렇지 않아봤자 백정 출신 임꺽정이 제일 유명하니 뭐 공자왈 맹자왈 내세울 게 어디 있나.
또 언젠가 “난 엄마 아빠 돌아가시면 화장해서 강에다 뿌릴 거야”라고 느닷없는 말을 꺼낸 적이 있다. “나 죽으면 무덤은 누가 지켜?”라고 핑계를 대긴 했지만 아마도 적잖이 서운하셨을 것이다.
요즘 들어서 부쩍 브로콜리너마저의 ‘편지’란 노래를 자주 듣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결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즐겨 듣던 인디밴드였다. 그녀가 “얘들은 참 음악을 쫄깃쫄깃하게 연주를 하는 것 같아”라고 하던 표현을 어느 샌가 다른 이들에게 나도 하고 있을 때가 있다.
언젠가 아버지가 “외손자 아무리 봐본들 정 안 간다”라며 지나가는 말로 했던 그 속뜻을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를 듣다 문득 깨달았다.
“아부지, 난 아마 결혼 못할지도 몰라요. 그러니 일찌감치 손주 안아보려는 꿈일랑 포기하세요. 우선 여자도 없고요, 그리고 돈도 없고요, 무엇보다 나좋다는 여자가 안 나타나요. 게다가 치명적이게도 능력도 없는 게 눈은 더럽게 높아요!”
아버지가 어린애처럼 누워 일그러진 얼굴로 웃어 보이며 농담하시는 모습이 우습고 한편으론 안도가 되었다. 그리고 마음 한 켠이 괜시리 무거웠다. 아무래도 마지막까지도 목구멍에서 나오려다 쏙 들어가고 마는 한 마디 말 때문이리라.
이제나 저제나 뜸만 들이지 말고 더 늦기 전에 해야겠다.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이글은 제가 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 '글마중'에서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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