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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으로 난 대추나무 가지

한혜윰

오전에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마침 일을 하던 중이라 받지 못했는데,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평소 누나가 문자 메시지를 자주 보내긴 하지만 이상하게 ‘확인’ 버튼을 누르고 그 짧은 몇 초의 순간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아빠 안면마비가 와서 지금 한의원 와있다.”

답장을 보내는 대신 점심을 먹고, 일에 몰두했다. 얼마간 그러고 있다가 검색창에 ‘안면장애’, ‘구안와사’ 따위를 쳐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괜히 미안한 마음에 집에 전화를 했다. 엄마가 받았다. 안면장애가 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데 아버지는 신경성이거나 바이러스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신경과에서 말했단다. 그래서 정밀검사는 받아 본 거야? 아버지 고혈압 있는 건 이야기 했고? 나는 괜히 엄마에게 신경질을 부리듯 이것저것 따졌다.

일을 마치고 아버지에게 들릴까 하다가 그냥 집으로 향했다. 뭔가 켕기는 기분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도시락 통을 씻고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삼촌!”

해나였다.

“삼촌 왜 안와?”

다섯 살 난 조카의 말에 머쓱해져 서둘러 전화를 끊고 집을 나섰다.

부모님 댁에 도착을 하니 다른 가족들이 아버지를 빙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그 가운데 마치 진기한 구경거리라도 보여주듯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누워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누나는 아버지가 눈을 못 감는다고, 눈을 감으면 윙크를 한다며 깔깔댔고, 엄마는 웬 새총 같은 나뭇가지를 아버지 입에 걸고 귀 쪽으로 당기고 있었다.

옛말에 ‘구안와사’가 오면 동쪽을 향해 가지가 난 대추나무를 꺾어 삐뚤어진 입에 걸어 당기면 낫는다는 이야기를 누나네 시댁에서 들었다며, 마침 누나 집 앞에 아무렇게나 자란 대추나무에서 꼭 동쪽을 향해 난 가지를 꺾어왔다는 대추나무 가지로 엄마는 아버지 입을 힘껏 당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심술궂게 보이던지, 거기다 대고 “뭐 그 따위 미신이 다 있냐!”며 빨리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왠지 아버지 입을 당기는 엄마의 모습이 즐거워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무슨 말도 안 되는 동쪽으로 난 대추나무 가지 타령이야!”라고 농 섞인 불만을 터뜨렸다.

“엄마 혹시 아빠한테 무슨 악감정 있는 거 아냐? 그래서 지금 복수하는 거지?”

“어머! 왜 아니래? 오늘 이걸로 이 양반 입을 찢어 놓을라니까!”

엄마의 말에 기가 막혀서 “내가 그거 못하게 하려고서라도 집에 안 가고 여기서 보초 서야겠다!”라고 툭 내뱉었다.

“얘가 언젠 지 집 있다고 유세더니! 가지 말라고 해도 가던 놈이 오늘은 웬일이래?”

난 아버지랑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누고, 엄마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나서 곧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님과 떨어져 산 지 고작 몇 해가 지났다고 이젠 제집이 편한 것이다.

문득 예전 일이 떠올랐다. 명절날 차례를 지내는데 숙부가 차례 순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참견하시는데 울컥 화가 치밀었던 적이 있었다.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부모님이 도둑질을 하거든 그것도 도와드리는 것이 효”라 하셨거늘, 까마득한 큰형님인 아버지에게 막내숙부가 말참견을 하는 것을 보고 부아가 치밀었던 것이다. 사실 그깟 차례 순서가 별건가. 어차피 우리 집 조상님도 본래 개똥이 말똥이로 불리다, 언젠가 피천득이 말한 것처럼 제비뽑기로 우연찮게 임가(林哥)를 뽑았을지 모를 일이다. 그것도 아니면 족보를 샀거나, 그렇지 않아봤자 백정 출신 임꺽정이 제일 유명하니 뭐 공자왈 맹자왈 내세울 게 어디 있나.

또 언젠가 “난 엄마 아빠 돌아가시면 화장해서 강에다 뿌릴 거야”라고 느닷없는 말을 꺼낸 적이 있다. “나 죽으면 무덤은 누가 지켜?”라고 핑계를 대긴 했지만 아마도 적잖이 서운하셨을 것이다.

요즘 들어서 부쩍 브로콜리너마저의 ‘편지’란 노래를 자주 듣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결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즐겨 듣던 인디밴드였다. 그녀가 “얘들은 참 음악을 쫄깃쫄깃하게 연주를 하는 것 같아”라고 하던 표현을 어느 샌가 다른 이들에게 나도 하고 있을 때가 있다.

언젠가 아버지가 “외손자 아무리 봐본들 정 안 간다”라며 지나가는 말로 했던 그 속뜻을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를 듣다 문득 깨달았다.

“아부지, 난 아마 결혼 못할지도 몰라요. 그러니 일찌감치 손주 안아보려는 꿈일랑 포기하세요. 우선 여자도 없고요, 그리고 돈도 없고요, 무엇보다 나좋다는 여자가 안 나타나요. 게다가 치명적이게도 능력도 없는 게 눈은 더럽게 높아요!”

아버지가 어린애처럼 누워 일그러진 얼굴로 웃어 보이며 농담하시는 모습이 우습고 한편으론 안도가 되었다. 그리고 마음 한 켠이 괜시리 무거웠다. 아무래도 마지막까지도 목구멍에서 나오려다 쏙 들어가고 마는 한 마디 말 때문이리라.

이제나 저제나 뜸만 들이지 말고 더 늦기 전에 해야겠다.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이글은 제가 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 '글마중'에서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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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의 전성시대)
- 영화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용서받지 못한 자』로 충무로에 잘 알려진 윤종빈 감독과 또한 그 영화로 주목받기 시작한 하정우, 그리고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손꼽히는 최민식이 그려낸 이야기는 과연 개봉하기 훨씬 전부터 관심을 끌어왔다.


  우선 영화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 하기 전에 한 마디만 하자면, 영화는 "재밌다."

  상업영화로서는 손색이 없는 이야기 전개와 진부한 조폭 영화를 살짝 비틀어 흥미로운 소재로 만든 것하며, 적절한 캐스팅, 그리고 시대적 감수성을 잘 그려낸 영상미학은 사실 흠잡을 데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이런 평은 엄연히 상업영화로서 그렇다는 것이다. 사실 많은 자본이 들어 간 상업영화에 대해 사회적 메시지나, 예술성을 요구하는 것은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상당히 고역(苦役)이다. 대중들은 대체로 사회적 메시지가 들어간 영화나 예술영화에는 비싼 관람료를 지불하려 들지 않는다. 이것은 대중들이 무지해서도 아니며, 그렇다고 사회적 메시지나, 예술을 추구하는 영화에 '재미'까지 가미하는 것도 또한 쉬운 일이 아니므로 그들의 탓도 아니다. 어찌보면 이러한 현상도 어쩔 수 없는 시장의 원리에 의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렇다! 영화는 사실 애초부터 예술이나 사회적 메시지를 포기해야할는지도 모른다. 수 많은 사람들의 공동제작을 통해 만들어지며 거대자본이 투입한 투자자와 제작사, 그리고 거대 배급사가 얽힌 영화시장은 이미 하나의 '문화산업'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문제는, 그런 시스템에 소외 된 채, 다양한 개성을 가진 연출과 스토리텔링으로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추구하고, 또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들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데에 있다. 

  『범죄와의 전쟁』을 이야기하는데 서론이 길었다. 왜 이런 운을 떼냐하면 아마도 최근 이슈가 된 영화들의 사회적 파급력이나,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의 영향 때문이리라. 사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다보면 의외로 영화를 보고나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경우가 있는 것과 정반대의 효과가 아닐까싶다. 할리우드 영화(물론 모든 할리우드 영화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는 대개 그저 흥미위주의 볼거리를 주로 하기 때문에 사실상 상업성 이면의 의외성을 발견하기가 쉽다. 그러나『범죄와의 전쟁』을 보면서 - 영화에 대한 특별한 정보 없이 본 나의 불찰이기도 하지만 - 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끝까지 "대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만 생각하다가 가끔 실없는 '경상도'농담에 '껄껄' 웃음을 터뜨리다 허망하게 엔딩 크레딧에 다다르고 만 것이다.

  결국,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게 뭔데?"라는 물음은 제법 나쁘지 않은 내러티브로 극적긴장감을 유지한 채 간간이 웃음을 터뜨려주는 영화를 따라가며 코미디 속에 놀아나다 스크린이 완전히 암전이 되고 나서야 그 물음을 상기시키며 허탈하게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너무! 영화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만 한 것 같다. 누차 말하지만 영화는 "재미있다." 그러니 지금부터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게 뭔데?"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아 보고자 희미한 기억을 더듬으며 글을 써본다.



  마초본능 속에 숨겨진 비열함의 종말

수 많은 건달들이 거리를 점령하고 걷는 포스를 보라. 남자들 또는 심지어 여자에게조차(?) 잠재해 있는 마초본성을 들끓게 한다.


  우선 조폭영화지만 단순한 조폭영화는 아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친구』라든지 『비열한 거리』와 같은 영화들이 연상되지만 또 그와는 색다른 맛이 있다. 또는 『대부』시리즈의 한국식 코미디화랄까. 아무튼 분명 이 영화는 조폭 세계, 즉 부제가 드러내듯 '나쁜 놈들'의 비열한 의리 아닌 의리를 보여주고는 있지만 왠지 모르게 그들은 멋있게 느껴진다. 여기서 그건 "그건 하정우가 멋있기 때문이야!"라든가, "최민식과 하정우, 그리고 조진웅의 멋들어진 연기 때문이지!"라고 반문 한다면 그건 미스캐스팅이든가, 아니면 이 영화의 주제가 '조폭미화'라든가, 여타 조폭영화의 진부함을 벗어나지 못한 그냥 재밌는 상업영화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남자는 누구나 '강함'을 동경하며, 여자는 누구나 '강한 남성'으로부터 보호받길 바란다(아, 이 말은 일반론적인 이야기니 페미니스트적 견해에서 반박하진 말길…). 그러니 '나쁜 놈'들을 이렇게 멋드러지게 그려낸 것은 대다수 관중에게 일종의 볼거리를 제공하는 상업성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문학예술작품들이 그렇듯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에 대한 해석은 그것을 대하는 독자 또는 관객의 몫이다. 가령, 그들의 이렇듯 멋진 모습은 실은 더럽고 비열한 '나쁜놈'들의 세계의 껍데기에 불과하며, 이것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자신을 포함한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는가에 대한 알레고리가 아닐까. 결국 주먹은 쇠고랑에 묶이고, 주둥이는 살아남는다. 살아남지만 그에 대한 카메라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결국 이들 '멋진' - 실은 비열함으로 가득 찬 - 남자들의 '힘' 또는 '권력', '돈' 그리고 '연줄'에 대한 욕구로 인해서 공권력과 벌인 "범죄와의 전쟁" 때문이 아니라, 마치 맑스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단계에 다다르면 스스로 붕괴할 것"이라고 예언한 것처럼 스스로 자멸하고 만다.



  시대적 감수성 뒤의 그늘진 역사 


  지금의 패션감각으로 보면 이들의 정장은 조폭이라기보다는 무슨 4·19혁명 당시 넥타이부대를 연상시킨다. 뭐 비유의 적절함은 웃어넘기고, 그들의 모습은 여타 조폭영화들과 - 기럭지 우월한 미남 조폭들의 수트빨(?) - 사뭇 다르다. 80년대 말, 유신체제가 붕괴되고 자유가 도래하나 했더니 다시 군부가 정권을 장악했고, 또 다시 민주주의는 유린당하더니, 4·13 호헌조치라는 비민주적 절차에 의해 군부독재를 이어가려하던 시기다. 벌써 20년 전의 그 시대, 지금의 아이돌이 '하의실종'이니 '스키니'니 하는 패션과 비교해 보면 참으로 '촌'스럽기 짝이 없지만 그 당시 가장 잘나가는 사람들의 수트빨인 것이다. 특이 저 흔히 어르신들이 '라이방'이라 부르는 레이벤 선글라스는 그야말로 당시 멋쟁이의 필수 아이템이었다. 
 


  영화 속에 종종 등장하는 이러한 소품들은 당시의 정서를 잘 표현하면서 관객들에게 시대적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속속 군부독재하의 여러 규제들이 풀리며 시민들의 자유가 서서히 드리우기 시작하고, 88올림픽을 개최하며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세계 속의 大한민국'이 되었다. 

  그러나 87년 6월항쟁이 없었다면, 누구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OB맥주'와 '딤플'을 마시며 룸살롱에서 노닥거리고, "살아있네!"라는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대다수의 민중들은 저런 단칸방에서 온 식구가 모여 서로의 온기로 겨울을 나는 시기였음은 말 할 필요도 없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호헌철폐"를 외치는 민중들의 모습이다. 지금 현재,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사실상 87년 6월 항쟁으로부터 얻어낸 6·29선언(대통령 직선제와 민주화의 이행)으로 부터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6·29선언을 할 수밖에 없도록 국민들이 한목소리를 낸 6월항쟁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호헌철폐'를 외치는 시위군중들의 모습은 단지 공기관(파출소 등)을 '습격'하고, 기물을 파손하고, 아무 데나 불을 지르는 방화범 '따위'로 그려진다. 과연 이것이 나만의 오해일까.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역사를 알고 있는 자의 경우에 그 장면들이 "민주주의를 억압한 첨병인 공권력에 대해 통쾌한 복수"를 한 것으로 비춰질 것이란 제작자의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를 아는 내가 봐도, 시위대는 단지 '비열한 것'들의 '비열한 짓거리'를 감추기 위한 도구로 밖에 사용되지 않은 것 같다. 최형배(하정우 분)는 시위대가 거리를 가득 채운 혼란 속에 칼에 찔리고, 시위대는 피를 흘리고 쓰러진 최형배를 보고도 모른 척한다. 보는 사람에 따라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으나 나에게 '영화속 시위대'는 피흘리는 민주주의의 성장과정으로 이해되기보다는 단지 '시위꾼'으로 게다가 그가 악인이든 아니든 피흘리는 한 '인간'을 무시해버린 몰인정한 '무리배'들로 비춰진다. 각종 연장을 들고 세력다툼을 하는 조폭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대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라는 나의 의문은 이 장면에서 극도로 증폭되어 버리고 말았다. 나름대로 몇가지 해석을 내려보자면, 우선 단지 당시 시대상황에 대한 묘사일 뿐 나의 오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해라고 하더라도 87년체제의 상징적 의미를 단지 그런 배경으로 드러낸 것에는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리고 최형배가 칼을 맞는 장면에 대한 극도의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었다라는 해석에도 비슷한 생각이 든다.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영화의 전체적 의미로 봤을 때, 민주주의든 뭐든, 시대의 큰 흐름 속에서 소외된 개인에 대한 단편을 제시한 것. 이것은 최형배라는 인물이 가지는 의미와 비교했을 때는 좀 동떨어지지만, 최익현이란 인물의 행태에 견주면 얼추 긍정적 해석도 가능할 듯하다. 가령 전광용의 소설『꺼삐딴 리』의 주인공 이인국과 매우 닮아 있는 최익현의 기회주의적 성격, 그리고 그와 관련된 여러 인물들이 만들어 낸 일종의 알레고리들은 이 시대의 민주주의가 개개인의 의식에도 크게 위협받고 있음을 반어적으로 보여준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결국 『범죄와의 전쟁』을 가까스로 긍정해보려는 수작일 뿐이다. 역시나 이 장면에 대한 아쉬움은 감출 수 없다.

  그 시대의 감수성과 역사의 현장을 화면에 담아냈지만 그 이면의 그늘진 모습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너무 솔직하기만 한 작품은 예술적가치가 떨어진다"라는 변명은 여기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88올림픽을 즈음한 여러 도시 미관, 개발 사업들 이면에 감추어진 민중들의 그늘진 역사, 과연 이것이 나의 물음의 답은 아니었던 것이다.



  탐욕스런 개인들의 사회
 
-폼나게 살고픈 개인들의 탐욕


가훈처럼 걸린 '가화만사성'이란 글자가 최익현(최민식 분)의 인간성을 잘 드러내주는 한편, 그 시대의 한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나의 물음에 대한 해답은 위 사진 속에 가훈처럼 떡하니 걸린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대학 』에 이르길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했다. 이 말은 먼저 자신을 갈고 닦고, 그 다음에 가정을, 그 다음에 나라를 올바로 다스려야 천하가 태평하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반대로 말하면 천하가 태평하기 위해서는 나라가 바로서야하며, 그를 위해서는 가정이, 또 그를 위해서는 스스로를 갈고 닦아야 함을 이른다. '가화만사성'은 여기에서 비롯 된 것이다. 청개구리 같은 주인공 최익현은 스스로를 갈고 닦기보다는 가정(?)을 먼저 닦는다. 족보를 뒤져가며 자기 핏줄 중 저명한 인사들과 친분을 쌓고, 그를 통한 온갖 비리로 사업을 확장시킨다. 자기와 연줄이 닿은 인사들의 전화번호부를 "10억짜리 전화번호부!"라 자랑한다. 재미있게도 나는 이런 그를 보며 김동리의 소설 『화랑의 후예』의 주인공 황진사를 떠올렸다. 어쩌다가 자신이 화랑의 후예임을 알고 자신의 가문의 족보와 내력을 자랑하며 양반행세를 하는 황진사는 조상을 들먹이며 허세를 부리지만 종국에는 가짜약을 속여 팔다 일본 순사에게 끌려간다. 변화하는 세태에 적응하지 못하고 몰락한 양반행세를 하는 전근대적 인물의 전형이다. 서술자 '나'는 처음에는 그를 냉소적으로 또는 비웃음의 대상으로 보지만 갈 수록 측은함을 느낀다. 최익현이라는 인물의 이름이 위정척사사상으로 유명한 조선 후기 문신 최익현과 동일한 것도 흥미롭다. 또한 앞서 언급한 『꺼삐딴 리』의 이인국과의 유사성도 무시하기 힘들다. 그러니까 최익현은 전근대적인 사고를 가진 전형적 인물인 동시에 기회주의적인 매우 입체적인 성격의 인물이다.


  끝까지 깡패가 아닌 나라의 녹을 먹는 공무원 출신임을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론 건달이고픈 이 남자 최익현. 그는 검사로부터 "너 같은 놈을 반달이라 부른다며!"라는 말을 들으며 머리를 쥐어 박힌다. 
 


  최형배는 어떻게 보면 최익현 보다 더 보수적인 면을 갖고 있기도 하고, 또한 그만큼이나 비열하기까지 하다. 또한 모든 것을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 믿는다. 그런만큼 그의 욕망은 흔히 조폭영화의 고루한 소재인 '의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언제든 자신의 비위에 맞지 않으면 '깔'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가 시위대로부터 무시당한 채 피흘리는 장면은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의 메타포로 해석할 수도 있을 듯하다.

  이들 두 인물 외에 상대 조직 김판호(조진웅 분)의 욕망, 그리고 검사 조범석(곽도원 분)의 욕망들까지 한 데 뒤엉키며 영화는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영화 속 인물 중 어느 누구도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자가 없다. 정의로울 것만 같던 조범석도 결국에는 자신의 입신을 위해 최익현과 거래를 하고, 최형배를 위시한 '나쁜 놈'들은 모두 소탕된다.



  홉스의 자연상태와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

  '범죄와의 전쟁은 과연 '진짜' 범죄와의 전쟁인 것인가?'라는 물음이 다시 떠오른다. 영화의 끝에서 최익현은 여전히 건재하며, 자신의 아들은 연수원 차석에도 불구하고 로펌이 아닌 검사가 된다.

  아마도, 감독은 '범죄와의 전쟁'은 삼청교육대라든지, 공권력으로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아닌 인간 모두에게 내재한 탐욕에서부터 시작함을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 결국, 수신(修身)이다. 단지 제도라든지, 공권력의 남용이라든지하는 것으로 범죄와의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민주주의조차도 하나의 제도로써 나쁜놈들의 전성시대를 조장하고 있음을 꼬집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상은 나의 기대를 글로나마 만족시켜보려고 『범죄와의 전쟁』이란 영화를 미화하려 한 것일 수도 있다. 다시말해 이 영화는 실은 그냥 재미를 위한 상업영화일 뿐일 수도 있다. 어차피 해석은 관객의 몫이다. 

  과연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무얼 말하고자 하였을까.

  그냥 80년대 향수를 자극하는, 남자냄새 물씬나는, 꽤 그럴듯한 조폭 코미디 영화를 만들어 흥행을 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탐욕의 시대에 살고 있는 개인들의 욕망을 꾸짖고 싶었을까. 여전히 조폭들이 판을 치고, '연줄'과 비리가 횡행하고, 검찰과 공권력조차 개개인의 욕망에 의해 부패한 요즈음, 나는  이 영화를 보며 80년대를 추억하고, 또 웃긴 장면에서 웃기보단 왠지 모를 씁쓸함을 가득 안은 채 엔딩크래딧이 다 올라가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역시나 인간의 자연상태를 홉스가 이야기 한 것처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 더 나아가 국가마저도 각 개인들의 투쟁으로 실은 홉스의 이상처럼 개인의 투쟁상태를 통제하지 못 하는 것인가. 하지만 나는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노자의 말 "다시 옛날로 돌아가 새끼를 묶어서 문자로 사용하게 하며, 그 음식을 달게 여기고 그 옷을 아름답게 여기며, 그 거처를 편안하게 여기고 그 풍속을 즐겁게 여기게 해야 한다. 이웃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과 개의 소리가 서로 들려도 백성이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의 참뜻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덧글- 촌평
  그래도 영화는 재밌었다. 최민식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특히 하정우의 연기는 정말 멋있긴하다. 조진웅의 연기도. 그러나 왠지 그런 '멋지다'라는 느낌이 영 개운치만은 않은 영화다. 끝으로 한마디만 하자면 "멋지기는 한데, 그래서 어쩌라고?"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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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범죄와의 전쟁 - 한국식 조폭영화가 나아가야할 길

    2012/03/09 00:50
    삭제
    [범죄와의 전쟁, 2012]                                     &nbs..
  2.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from BLOG
    2012/03/17 00:35
    삭제
    [범죄와의 전쟁]이 탁월한 것은 영화의 그 이죽거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캐릭터들이 사실성을 잃지 않고 생생히 살아 숨쉰다는 것이다. 이들은 오늘날까지도 망령처럼 떠돌아 다니는 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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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누구
    2012/03/19 12:4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같이 본 사람은 더 멋진듯


오래 전 겪은 일이다.

나는 원래 혼자가 편한 사람이다. 학창시절에도 가장 싫어했던 것은 팀워크로 과제물을 제출하는 것이었을 정도다. 혼자하면 더 잘할 수 있는데, 뭐 이런 생각이었나보다. 그래서 늘 혼자이길 원했다. 오히려 누구에게 함께 하자고 말하는 것이 어색했다. 항상.

언젠가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려고 밤에 집을 나섰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어느 낯선 지방도를 달리고 있었다. 내 자전거에는 그 흔한 랜턴이나 LED 라이트도 달려 있지 않았다. 마침 그믐이었다. 지방도에는 그 흔한 가로등도 없었으니, 흔하디 흔한 빛이 모조리 사라진 말그대로 익숙지 못한 암흑이었다.

그때 익숙하다 느꼈던 고독에게서 낯선 느낌을 받았다. 항상 함께 해온 녀석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아무것도 없이 오직 어둠만 존재하는 69번 지방도를 끝도 없이 달려갈때, 내 주변엔 고독마저도 날 떠나고 정말로 혼자가 되어버렸다. 왠일로 옆에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 친구가, 가족이, 사랑이 필요하다고 몸부림치듯 공포가 밀려왔다. 순간 푸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산짐승이 도로 옆의 수풀에서 튀어나왔다. 멧돼지인 듯한 검은 그림자가 내 자전거 앞으로 돌진해 올 때, 가뜩이나 공포로 경지된 나의 어깻죽지는 그만 일손을 놓고 퇴근을 해버렸다.

나는 자전거와 함께 69번 지방도의 품으로 고꾸라졌고, 지방도는 낯선 이방인을 따스하게 품어주기는 커녕 딱딱한 가슴으로 배치기를 해버린 거다. 다행히 헬멧을 썼으니 망정이지 큰일날 뻔 했다. 나는 아픈 것은 잠시 잊고 난데없이 나타난 짐승에 잔뜩 겁을 먹고 얼른 자전거를 타고 속력을 냈다.

어떻게 거길 빠져나왔는지 잘 모르겠다. 달리다 보니 어느덧 가로등이 내 주변을 밝혀주고 이었고 이윽고 날이 밝아왔다. 난 그 어둠 속에서 내 안에서 그동안 타인의 따스한 손길을 바라던 여린 소년을 만났고 그 소년의 손을 잡아주었던 것 같다.


며칠 전 악몽아닌 악몽을 꾸었다.

최근 며칠 째 잠이 오지 않아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그런데 수면제를 먹으면 이상하게도 잠에서 깨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간접적인 죽음을 체험하기라도 한 듯하다. 아니 죽음과 관련된 꿈을 시리즈로 꾸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인간의 뇌에 기생해 결국에는 숙주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외계생명체에 감염이 되어 죽음을 준비하게 되는 내용이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가타카와 같은 SF영화의 세계관과 유사한 시공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외계생명체에 감염이 되어 곧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모두 정리하고, 여행을 준비한다. 가장 간편한 것들과 꽤 멋진 옷들 - 예를 들면 왕가위 영화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남자 주인공들의 수트나, 가죽 자켓 같은 것들-을 챙긴다. 그리고 혼자서 여행을 떠난다. 왠지 모를 공허함에 빠져들고 알 수 없는 고독감과 공포에 시달린다. 죽음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이고 인정하려 했지만 점점 다가오는 그 때를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그럼에 따라 차차 주변인들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결국 혼자가 되고 만다. 그리고 이미 죽음을 겪은 듯한 극심한 공포심에 눈을 떴다.


그날, 예전에 알고 지낸 지인이 이야기한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그는 자기의 강인함을 기르기 위해 혼자 공동묘지에 가서 하룻밤을 지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느닷없이 늦은 밤 차를 몰아 근교의 공동묘지로 향했다.

나는 무신론자다. 신을 믿지 않으므로 미신 같은 것, 또는 불가사의한 것들을 믿지 않는다. 설사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모두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현재 증명되지 않는 것은 과학이 그만큼 발전하지 못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모두 증명될 것이다. 그걸 갑자기 경험론적으로 증명하고 싶었나보다.

아무튼 공동묘지를 약 100여미터 앞두고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차 앞에는 트럭 한 대가 나와 함께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튼 좌회전 신호가 하도 안 와서 담배를 한 대 피우는 사이 좌회전 신호로 바뀌자마자, 거의 5초도 지나지 않아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느라 신호를 늦게 보았고, 출발을 하지 않은 트럭에 대해서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창문을 내려 트럭 운전석을 힐끔 봤는데, 운전석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잠시후 트럭이 출발을 했고, 나도 뒤따라 갔다. 네비게이션이 잠시후 우회전을 하라고 지시했다. 앞서가던 트럭이 먼저 우회전을 했다. 천천히 외따른 길로 뻗은 길로 트럭을 뒤따라 갔다. 허허 벌판과 야산으로 이어진 농로를 뭔가 음산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트럭을 5미터 정도 차이를 두고 차를 몰았다.

왠지 모를 음산한 기운이 길에 서려 있었다. 길은 외따른 길이었고 되돌아가려면 후진을 해야했다. 잠시 주변 환경에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앞서가던 트럭이 없었다. 길은 갑자기 야산을 사이에 두고 두 갈래로 갈라졌고, 네비게이션은 목적지에 도착했다며 꺼져버렸다.

차에서 내려 손전등으로 주변을 한번 휙 둘러보았다.

"대체 어디가 공동묘지란 말이야?"

너무 어둡기도 했고, 주변은 낡은 비닐하우스와 야산뿐이었다. 일단은 두꺼운 PVC 파이프로 만들어진 다리를 건너 야산을 올랐다. 그쪽이 공동묘지 같았다. 손전등으로 이리저리 비출 때마다 뭔가 섬뜩한 것이 나올 것만 같아 다리가 후들거렸다. 얼마쯤 가다 보니 묘지는커녕 밭이라든지 비닐이 벗겨진 비닐하우스라든지 하는 구조물들만 나타났다. 더 올라가다간 길을 잃어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고, 구조물 속에서 뭔가가 나타날 것 같았다.

오줌을 지릴 것만 같아 부리나케 야산을 내려와 차에 시동을 걸고 집으로 돌아왔다.

무신론자로서 나의 신념과 정신을 시험하기 위해, 다른 이들의 죽음을 통해 죽음에 대해 간접체험을 하기 위해 갔는데, 결국 '나는 겁이 많다'라는 사실만 알고 돌아왔다.

공포는 아마도 '혼자'라는 것, 고독에서부터 외로움에서부터 기인하지 않을까.

자살시도를 다섯 번한 지인이 있다. 아마 그가 자살을 결심했을 때, 누구와 의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모두 '혼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모든 죽음과 연관된 정념들은 '혼자'라는 것에서 나오지 않을까한다.

결국, 인간의 신체가 생물학적으로 죽음에 다다르지 않더라도 여러가지 의미에서 '혼자'라는 상태에 놓이면 그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어쩌면 인간(人間)이라는 말 안에 모든 해답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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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14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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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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